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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삶은 공존이다_박제영 시인
담당부서 강원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전화번호 조회수 901
내용 삶은 공존이다

박제영(시인)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데 의지하는 것이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다(天依人人依食, 萬事知食一碗)’는 해월 선생의 말씀은 일종의 생태우주론이다. 식구론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흡사 가마솥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흙과 물과 공기 그리고 거기에 기댄 모든 생명체들이 한솥밥을 먹고 사는 식구라는 생각을 한다.// 식구/ 한솥밥을 먹는 둥글고 둥근 입이/ 한울이다.// 한 식구가 모여 한 세상을 이룬다./ 그 한 마음으로 한 시집을 묶는다.”
위의 글은 졸시집, 『식구』를 묶으면서 썼던 소위 ‘시인의 말’이다. 내가 식구라는 시를, 식구라는 시집을 묶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진은영의 시를 읽고 가족과 식구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하게 된 것도 그 한 이유이다. 진은영은 「가족」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이 시를 읽고 가족과 식구라는 이중의 관계를 생각했더랬다. 근친(近親)이 근원(根怨)을 낳기도 하지만, 독(毒)과 약(藥)은 한 몸을 이루는 두 성질인 것. 멀쩡했던 식물이 죽기도 하지만, 죽어가던 식물이 살기도 하는 것이니, 가족과 식구는 같은 듯 다른 관계, 다른 공간이구나. 가족이 같은 유전자로 이어진 소위 혈연의 집단이라면, 식구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졌지만 한솥밥을 먹는 사회적 집단이라는 생각. 가족이 동이불화(同而不和)를 보여준다면 식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 가족이 죽임의 관계라면 식구는 살림의 관계라는 생각. 그러니까 진은영 시인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가족의 병리현상이라면 나는 그 반대로 식구의 치유력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는 그런 생각. 나의 시(집), ‘식구’는 그렇게 구상되고 쓰여졌던 것.
윤노빈 선생은 『신생철학』에서 이렇게 썼다. “생존은 개인적으로 지속한다기보다 ‘공존적으로’ 또는 ‘공유적으로’ 지속한다. 생존이 사유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생존의 지속성을 보장해 준다. 생존의 공존적·공유적 지속은 역사적 지속이다.”
나무가 저의 수직 상승만을 욕망한다면, 저 울울창창한 숲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숲은 한울(큰 우리)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영복 선생 또한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무와 풀과 곤충과 짐승이 더불어 마침내 숲을 이루는 것이니, 사람살이 또한 더불어숲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존은 공존이다.
사람이 왜 사람일까? 이 단순한 질문을 잊고 산다. 한자로 풀어보면 사람은 인(人)이고 나아가 인간(人間)이다. 둘이 기대야 비로소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고[人], 사람과 사람 사이로 공존해야 하는 존재가 또한 사람이다[人間)]. 삶은 공존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삶이 생존이 곧 공존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독존(獨存)을 위해 아등바등한다. 공존은 공감(共感)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자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함께 나누는 것. 나와 다름을 차별 없이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 싯다르타의 사자후(獅子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던가. 세상 모든 생명체가 차별 없이 존귀하다는 뜻 아니던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방치할 때, 당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도 차별받는 것이니. 지구별에 사는 우리 모두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4월 4일 정신건강의 날 강원일보 문화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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